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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by detomandjerry 2025. 4. 12.

제주 4·3 사건(한국 한자: 濟州四三事件, 영어: Jeju uprising, Jeju April Third Events, Jeju Massacres)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조선로동당의 지휘를 받는 빨치산 조직의 진압 과정에서 제주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2][3] 2019년 12월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결정한 제주 4.3 사건 민간인 희생자 수는 14,442명이다(진압군에 의한 희생자 7,624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1,528명).[4] 단, 민간인 희생자는 최대 25,000~30,000명으로 추정된다.[4] 한편 진압군은 1,091명 사망하였다. 2003년 10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진상조사 보고서에 고문, 재판 없는 즉결처분, 연좌제 등의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사건의 최종 책임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있다고 결론내렸다.[4] 이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며 사과했다.[5] 2019년 대한민국 경찰과 군은 진압 과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 사과했다.[6]

 

배경 및 발단

 

당시 제주도 상황 (1946) 제주도 인구는 해방 전해인 1944년 21만9천여 명에서 1946년 27만 6천여 명으로 2년 새 5만 6천 명 이상 늘어났다. 인구의 급증은 전국적인 대흉년과 맞물려 사회경제적으로 제주 사회를 압박하는 요인이 됐다. 1946년 제주도의 보리 수확량은 해방 이전인 1943년과 1944년에 견줘 각각 41%, 31%에 그쳤다. 제조업체의 가동 중단과 높은 실업률, 미곡 정책의 실패 등으로 제주 경제는 빈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게다가 기근이 심했던 1946년 여름 제주도를 휩쓴 콜레라는 2개월여 동안 최소 369명의 사망자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