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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야기

원전도, 석탄도 안 되는 독일… 전기는 어디서 오는가?

by detomandjerry 2025. 4. 29.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 문제는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마주한 과제다. 이 가운데 독일은 전력 생산 방식에서 상당히 독특한 길을 걸어왔다.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자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2023년을 기점으로 자국 내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했고, 그 이전부터도 석탄 화력발전소 축소를 위해 꾸준히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에너지 소비가 많은 산업국가인 독일이 이처럼 두 가지 주요 전력원을 제외한 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글에서는 독일의 전력 생산 구조 변화,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 그리고 전력 수급을 둘러싼 도전과 해법을 중심으로 그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자.

원전도, 석탄도 안 되는 독일… 전기는 어디서 오는가?
원전도, 석탄도 안 되는 독일… 전기는 어디서 오는가?

에너지 전환의 길: ‘아토마우스(Ausstieg)’와 석탄 감축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정책인 ‘아토마우스(Atom-Ausstieg)’를 본격화했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의 점진적 폐쇄를 통해 원전 의존도를 ‘0’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2023년 4월, 마지막 원전 3기를 폐쇄하며 독일은 완전한 탈원전 국가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원전을 없애는 것이 아닌, 에너지 구조 전반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탈원전 정책과 함께 추진된 것이 바로 석탄 발전 감축이다. 독일은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인 석탄 발전을 단계적으로 줄이기 위해 ‘2030년까지 석탄 발전 전면 중단’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두 가지 주요 에너지원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전력 공급의 대안 마련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독일의 핵심 전략은 바로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 에너지 전환)’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화, 전력망 현대화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에너지 정책 패키지로, 독일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과 철학을 집약한 개념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풍력과 태양광이 중심


탈원전과 석탄 감축이라는 큰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생에너지의 비약적인 성장이다. 독일은 전력 생산에서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2000년대 초반 6% 수준에서 2023년 기준 약 51%까지 끌어올렸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생에너지원은 풍력 발전이다. 특히 북부 해안 지역에는 대형 해상 풍력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내륙 지역에서도 육상 풍력 터빈 설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풍력은 연중 바람이 비교적 일정한 시간에 불어오는 독일 기후 특성과 잘 맞아떨어져 전력 안정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축은 태양광 발전이다. 독일은 일조량이 풍부한 국가는 아니지만, 주택 및 공공건물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분산형 발전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 왔다. 정부의 보조금 정책과 송전망 연계 시스템 개선 등 제도적 기반 덕분에 태양광 발전은 꾸준히 성장 중이며, 전체 전력 생산의 약 11~12%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바이오에너지, 수력발전, 폐기물 에너지 등 다양한 형태의 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 공급망에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핵심은 단순히 발전 설비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전력 수요-공급의 시간적 불균형을 해결하는 기술적 기반을 함께 마련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독일은 에너지 저장 기술, 스마트 그리드, 수소 연료 등 다양한 기술적 대안을 병행 개발하고 있다.

 

전력 안정성과 수급 조절의 과제


독일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생에너지 확대 국가이지만, 여전히 전력 안정성과 수급의 유연성 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풍력이나 태양광은 기후와 시간대에 따라 출력이 급변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기저부하(기본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은 현재도 일정 비중의 가스 발전소를 운영 중이며, 전력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경우에는 인접 국가들과의 전력 거래를 통해 공급을 조절하고 있다.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체코 등 유럽 전력망과 연결된 공동 전력시장을 활용함으로써 필요시 전기를 수입하거나, 반대로 잉여 전력을 수출하기도 한다.

 

또한 전력 저장 기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배터리 저장 시스템과 함께, 수소를 활용한 파워-투-가스(Power-to-Gas) 기술이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이는 남는 전력을 수소 형태로 저장했다가 필요 시 전기로 재전환하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에너지 수요 관리 또한 중요한 이슈다. 독일 정부는 전력 소비 효율을 높이기 위해 산업체, 공공기관, 가정 등 전 부문에서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하고 있으며,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산업에는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병행 적용해 수요 측면에서도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함께 배터리 저장소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V2G(Vehicle to Grid) 시스템도 장기적으로는 전력망 안정화의 일환으로 고려되고 있다.

 

결론: 도전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제로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과 비용 증가, 전력 공급 불안정성이라는 단점이 존재한다. 실제로 전기요금이 상승하고, 일시적인 전력 수입 의존도가 증가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독일은 이러한 과도기를 장기적인 기후 중립 목표와 기술 혁신의 기회로 삼고 있다.

 

재생에너지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에너지 저장 시스템과 스마트 전력망 기술의 발전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또한 시민 사회의 높은 환경 의식과 분산형 전력 생산 참여는 독일의 에너지 정책이 지속 가능성과 민주성 모두를 고려한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결국, “원전도 안 되고, 석탄도 안 되는” 독일은 단순한 이상주의적 선택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정책적 일관성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 전환을 추구하고 있다. 독일의 사례는 세계 각국이 탈탄소 사회로 이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